1만보에 얽매일 필요 없다”…‘이렇게’ 걸었더니 사망위험 뚝
걷기를 운동으로 삼으면 하루에 ‘1만보’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앞서곤 한다. 그러나 하루 걸음수가 5000보에 못 미치더라도 빠르게 걸으면 걸음수는 많지만 더 느리게 걷는 것만큼이나 사망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9월8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교 의학연구센터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분석해 얻은 이같은 결과를 ‘영국 스포츠 의학 저널(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 실었다.
영국 바이오뱅크는 성인 약 50만명의 건강 정보를 모아둔 자료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2013~2015년 움직임을 재는 손목장치(가속도계)를 일주일간 착용한 40~69세(평균 61.5세) 성인의 자료를 분석하고, 이후 2022년 11월까지 이들의 사망 여부를 확인했다. 추적 기간 동안 6만4743명 중 1697명이 숨졌다. 심혈관질환 사망을 따로 분석한 7만75명 중에서는 502명이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했다.
연구팀은 하루 걸음수를 ▲5000보 미만 ▲5000~7500보 ▲7500~1만보 ▲1만보 이상 등으로 분류했다. 걷는 속도는 하루 중 걸음이 가장 빠른 30분의 평균 분당 걸음수로 측정했다.
연구팀은 하루 5000보 미만을 걸으면서 가장 빠른 30분의 걸음이 1분당 약 45보인 사람을 비교 기준군으로 삼았다. 하루 걸음수가 5000보에 못 미쳐도 걸음이 1분당 80보에 이른 사람은 기준군보다 사망 위험이 28% 낮았다. 하루 5000~7500보를 채우면서 1분당 60보로 비교적 천천히 걸은 사람도 기준군보다 사망 위험이 30% 낮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걸음수가 적더라도 속도를 높이면 걸음수는 많지만 느리게 걷는 것과 비슷한 건강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준군과 비교해 사망 위험이 가장 낮았던(43%) 집단은 하루 7500~1만보를 걸으면서 1분당 약 100보로 걸은 사람, 즉 많이 그리고 빨리 걸은 사람이었다.
심혈관질환 사망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하루 5000보 미만 걸은 사람은 걷는 속도가 빠를수록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낮아졌다. 하루 5000~7500보를 걸으면서 1분당 60보로 걸은 사람은 기준군보다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32% 낮았다.
연구를 주도한 이매뉴얼 스타마타키스 교수는 “설령 걸음수가 5000보에 못 미쳐도 걷는 속도가 빠른 사람은 사망 위험이 크게 낮았다”고 설명했다. 논문 공저자인 니컬러스 쾨멜 박사는 “1만보 목표는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1960년대 일본 만보계 캠페인에서 나왔다”며 “하루 4000보를 걸어도 의식적으로 힘차게 걸으면 의미가 있고, 빠르게 걷지 못하는 사람도 느린 속도로 걸음수를 조금씩 늘리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거나 장애, 환경 문제로 걸음수를 늘리기 힘든 이들에게 이번 결과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앉아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루 30분 이상 속도를 높여 걷는 방법을, 빠르게 걷기 어려운 사람은 5000~7500보를 편한 속도로 걷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매슈 아마디 부교수도 “모든 사람에게 맞는 속도는 없다”며 “체력이 좋은 40대에게 편안한 속도가 70세에게는 숨이 가쁜 최고 속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빠른 걸음을 1분 이상 이어갈 때 ▲숨이 눈에 띄게 가빠지고 ▲몸이 따뜻해지며 ▲짧은 문장으로 말을 할 수 있고 ▲노래를 편하게 부르기 어려운 정도 등이 적당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욕이 앞서 2주 바짝 걷는 것보다 몇 달이나 몇 년에 걸쳐 꾸준히 걷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연구팀은 참가자를 비교한 관찰연구여서 걸음수나 속도와 사망 위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걷는 속도를 높인다고 사망 위험이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