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강천산"은 산 아래 볼거리가 아주 많다. 함 가봐라!
剛泉山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있는 100대 명산. 높이는 해발 580m이며, 1981년 1월 7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정된 군립공원(제1호)이다. 노령산맥에 속하며 산경표 상으로는 호남정맥에 위치한 산이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이 진안 주화산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뉜다. 이때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호남정맥이 내장산과 백암산을 거쳐 강천산(왕자봉)과 산성산을 일구고, 이후 무등산과 제암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에서 맥을 다 한다.
강천산은 호남정맥이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의 경계를 이루며 지나가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군립공원(1981년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천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했다. 신라 진성여왕때(887년) 도선국사가 개창한 강천사(剛泉寺)가 있으며, 산 이름도 강천사(剛泉寺)에서 유래됐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유명하다.
산림청, 월간 산, 한국의 산하에서 지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이다.
설악산, 주왕산 등 단풍이 많이 일어나는 산들에 비하면 밀리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수로 단풍이 일어나서 등산객들이 찾는다.
강천산 단풍의 정식 명칭은 '애기단풍'인데, 잎이 작고 색이 유난히 붉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길 중 하나로 꼽힌다. "내장산 단풍보다 섬세하고 화려하다"는 평이 많다.
위는 육산, 아래는 골산(骨山)이어서 바위들이 거의 산중턱 아랫녘에 몰려 있다. 5km 암벽협곡으로 비룡계곡의 비룡폭포, 물통골의 약수폭포, 소목골 용두폭포, 계곡 본류로는 병풍바위의 인공폭포, 장대한 구장군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골골마다 발원하여 흐르는 맑은 물이 중천으로 합류하여 바위와 바위, 돌과 돌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계곡을 울리며 강천호로 들어간다. 여기에 용바위, 호두암, 투구봉의 바위들과 금강굴, 수좌굴, 형제굴의 동굴이 어우러지고 강천사와 삼인대의 전설까지 깃들어 있다.
강천산은 야간에도 개방한다. '단비의 사랑'이라는 테마로 화려한 미디어아트와 조명이 계곡길(병풍폭포~천우폭포 구간)을 수놓는다. 밤 산책의 명소로 급부상했다.

강천산행 지도
매표소에서 출발해서 왼쪽 시계 반대방향으로 환종주 하는 코스다. 거리 약 10km에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강천산군립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병풍바위와 병풍폭포가 가장 먼저 나타난다.

맨발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다.

우틀해서 산으로 먼저 올라간다.

40분 정도 걸으면 능선에 도착한다.

한 시간만에 첫번째 봉우리인 깃대봉에 도착한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조망은 없다.

강천산 정상인 왕자봉 정상석이다.
높이 585.8 m이다.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다.
노령산맥에 속하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다. 광덕산(廣德山:565m)·산성산(山城山:603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순창 읍내와 멀리 아미산이 보인다.

세 번째 봉우리인 형제봉까지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강천산은 세 봉우리 산이다.

멀리 추월산이 보인다. 저 산 아래는 담양호가 있을 것이다.

강천 저수지로 내려간다.

저수지 곁을 따라가면 데크길이 등장한다.

강천산 남근석 剛泉山男根石
강천산 계곡의 남근석은 1998년 풍산면 상촌리 상촌교 확장 공사를 하던 중 상촌리 방향의 교각 부근에서 발견된 남근석 가운데 하나이다.
상촌교는 순창읍과 풍산면을 연결하는 자그마한 하천 교량인데, 당시 교량 확장 공사로 교각을 해체 작업하던 중 크고 작은 4~5기의 남근형 선돌을 발굴하였다. 여기에서 발굴된 남근석은 모두 자연석이지만 발기된 남근 형상을 한 선돌이었다.

저수지 옆 계곡길을 따라가면 볼거리가 많다. 건너편의 멋진 기암절벽.

강천산 남근석 剛泉山男根石
풍산면 상촌리 교각 공사에서 발굴된 남근석 가운데 제일 큰 것은 상촌리 마을 앞에 세워 놓았고, 그다음 큰 남근석은 순창읍 가남리 남산대 입구에 옮겨다 세워 놓았으며, 크기가 제일 작은 남근석을 강천산에 옮겨다 세워 놓았다. 이 강천산 남근석은 강천산과 별 관련이 없으나 순창군에서 강천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세웠다.
풍산면 상촌리는 풍수지리적으로 남근 지형이다. 마을 뒷산에서 마을 앞으로 뻗어 내린 남근 지형 끝머리 부근, 즉 남근의 귀두 부분에 검바위라는 바위더미가 위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상촌리는 남근의 기운이 센 마을이었다.
남근의 기운이 드세지는 것을 억제하고자 상촌리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 진압 풍수 차원에서 압승 기능을 가진 남근석을 매몰하였다고 본다.
마을 주민들은 왜 남근석이 매몰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매몰 남근석으로는 가장 최대형의 남근석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선녀계곡
선녀 계곡은 길이 1,250m로 이 산의 정상이 선녀봉인데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 계곡으로 불렀다.

용머리폭포
용머리 폭포의 물은 수컷 용과 함께 승천하지 못한 암컷 용의 머리 부분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 세상에서 천년 수를 다한 수컷 용이 승천할 때가 되었는데, 이 수컷 용에게는 아래 용소[극락교 아래]에 살고 있는 본처인 암컷 용과 향가리에 살고 있는 소첩인 용이 있었다고 한다.
승천할 때 둘 중 하나하고만 올라가야 하는데 본처 암컷 용이 승천하지 못하여 피를 토하며 쓰러져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용천 계곡 우측으로 누워 있는 용의 머리 부분에 핏자국이 남아 있고, 비가 오면 용의 눈물이 되어 흐른다고 해서 이 폭포수를 용머리 폭포라고 부른다.

구장군 폭포 九將軍瀑布
구장군 폭포는 9명의 장군이 결의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삼한 시대에 혈맹으로 맺어진 9명의 장수가 전쟁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 하였다.
그런데 죽으려던 순간, 이렇게 죽을 바에는 다시 한번 전장으로 나가 싸워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굳은 마음을 먹고 출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강천산 계곡 剛泉山溪谷
더운 여름이면 강천산 계곡에는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길이가 약 3.5㎞ 되는 강천 계곡에는 7개의 다리가 있다.
제2 주차장 옆에 있는 광덕교(廣德橋)와 매표소 지나서 처음 나오는 다리인 신선교(神仙橋), 병풍 폭포 옆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다리인 도선교(道詵橋), 등산로 4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고추 모양의 다리인 금강교(錦江橋), 메주 모양의 다리인 송음교(松陰橋), 강천사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극락교(極樂橋), 현수교 올라가는 목책 계단 밑에 있는 십장생교(十長生橋)가 있다.
순창이 장류의 고장이라 다리 모양도 장류를 상징하는 조형물들로 만들어져 있다. 강천산 계곡에는 맨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단풍터널길
이 산 아래의 나무들은 거의 대부분이 단풍나무들이라서, 가을철에는 내장산 못지 않은 단풍을 자랑한다.

강천산 현수교가 보인다.
이 나무들도 전부 단풍나무들이다.
왕자봉에서 바로 내려왔다면, 출렁다리로 바로 올 수 있으나 형제봉을 돌아 호수방향으로 계곡길로 오면 현수교를 구경하기 위해 100m정도를 계단으로 올라가야 함.

강천산 현수교 剛泉山懸垂橋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사에서 서남쪽으로 400m 거리에 위치하며, 해발 250m의 능선을 양쪽으로 연결하고 있다.
강천산 계곡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북동쪽에 위치하는 강천산[왕자봉, 584m]과 남서쪽에 위치하는 신선봉[425m] 능선을 연결하고 있다.
강천산 군립 공원 안에 있어서 강천산 현수교라고 부른다.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산의 명물로서 사랑받고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구름다리’, 흔들린다고 ‘출렁 다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다리 위에서 본 정상 왕자봉

다리 위에서 본 깃대봉

강천사 모과나무 剛泉寺 木瓜나무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산에 있는 모과나무. 전라북도 기념물 제97호이다.
1998년 1월 9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97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20m, 둘레 3.1m로 강천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수령 300여 년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로 추정된다. 강천사에 있던 한 고승(高僧)이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노거수(老巨樹)이지만 옆에 냇가가 있어 수세(樹勢)가 왕성하고, 주변의 다양한 활엽수들과 인근의 삼인대(三印臺)와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순창 삼인대 淳昌 三印臺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각.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강천사(剛泉寺) 앞 내를 건너 남쪽에 있는 정면 1칸의 비각으로 크기는 높이 157cm, 너비 80cm, 두께 23cm이다.
비각 안에는 높이 157㎝, 너비 80㎝, 두께 23㎝의 삼인대 비(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1744년(영조 20) 4월에 세운 것으로 홍여통(洪汝通), 윤행겸(尹行謙), 유춘항(遊春恒) 등 군의 선비들이 발기하여 대학자인 이재 (李縡:1680∼1746)가 비문을 짓고, 민우수(閔遇洙:1694∼1756)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兪拓基:1691∼1767)가 전서(篆書)를 썼다.

강천사 剛泉寺 전경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末寺)로, 887년(진성여왕 1)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인 1316년(충숙왕 3) 덕현이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조선시대 1482년(성종 13)에는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薛)씨의 시주를 얻어 중창하였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옥천군지》에는 명적암(明寂庵), 용대암(龍臺庵), 연대암(連臺庵), 왕주암(王住庵), 적지암(積智庵) 등 5개의 부속 암자가 남아 있다고 적혀 있다. 그 중 왕주암은 후삼국의 분쟁이 한창이던 때에 왕건이 이 암자에서 유숙하였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강천사 샘물과 범종각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옥천군지》에는 명적암(明寂庵), 용대암(龍臺庵), 연대암(連臺庵), 왕주암(王住庵), 적지암(積智庵) 등 5개의 부속 암자가 남아 있다고 적혀 있다. 그 중 왕주암은 후삼국의 분쟁이 한창이던 때에 왕건이 이 암자에서 유숙하였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4년 태능(太能)이 중창하였다. 다시 1855년(철종 6) 금용당이 재건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칠성각, 첨성각, 보광전의 당우가 불탔다. 그뒤 주지 김장엽이 1959년에 첨성각, 1977년에 관음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서도 계곡길이 이어진다.

걸인들이 모여 있었다는 거라시바위

계곡 건너편에는 투구봉이 보인다.

완벽한 연리목이 한 그루 서 있다.
連 : 이을 연 理 : 이치 리, 결 리 木 : 나무 목
나무가 자라면서 서로 너무 가까이 자라면서 성장한 줄기가 맞닿아 한나무 줄기로 합쳐져 자라는 현상을 말한다.
비슷한 현상으로 연리지(連理枝) 현상이 있는데 연리지는 가지가 연결된 것이고 연리목은 나무 줄기가 연결된 현상으로 모두 희귀한 현상으로 여겨지지만 서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나무끼리 연리가 가능하게 된다. 연리목(連理木)은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되어 사랑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군립공원이라서 그런지, 산 아래에는 식당가와 커피숍들이 많다. 더덕구이로 식사 마무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