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소년’서 e스포츠 ‘아재 국가대표’로
亞게임서 격투게임 金수성 나서는 이광노-배재민-연제길
어릴 적 하루 용돈 오락실서 탕진… 부모님께 등짝 맞아도 하굣길 들러
‘게임으로 밥벌이’ 상상 못하던 시절… 생업과 병행하며 선수 생활 이어가
게임 인생의 한, 금메달로 풀고싶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e스포츠 대전격투 종목에 출전하는 이광노, 배재민, 연제길(왼쪽부터)이 최근 서울 마포구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실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어린 시절 동네 오락실을 누볐던 소년들은 불혹 안팎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한다. 박형기 기자 [email protected]
‘오락실 소년’이었던 김관우는 44세였던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땄다. 대전격투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 우승하며 한국 e스포츠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 그는 “어릴 적 오락실에서 격투 게임을 너무 잘한단 이유로 형들에게 옆구리를 맞아도 기술 콤보를 넣는 손동작을 멈추지 않았던 의지와 승부욕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40대 남성들의 가슴에도 활활 불이 타올랐다.
항저우 대회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는 내달 19일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도 11종목에 걸쳐 열린다. 이번 대회에도 김관우처럼 불혹 안팎의 ‘오락실 소년’ 출신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번 아시안게임 대전격투 종목은 개인전으로 치러진 항저우 대회와 달리 단체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트리트 파이터 6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 철권 8 등 3개 게임 선수들이 종목별로 최소 한 게임 이상 맞붙어 5판 3승제로 승부를 가린다.
스트리트 파이터 6에는 연제길(39)이 출전한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실에서 본보와 만난 연제길은 “어릴 때 오락실을 다니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못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됐으니 통쾌한 복수를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라며 웃었다. 연제길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의 이광노(45), 철권 8의 배재민(41)과 한 팀을 이뤄 메달 사냥에 나선다.
국가대표 삼총사의 게임 인생은 모두 동네 오락실에서 시작됐다. 하루 용돈을 오락실에서 탕진하기 일쑤였고, 용돈이 떨어지면 오락기 밑이나 놀이터 모래밭을 뒤져 동전을 찾았다. 여러 동네 오락실을 돌아다니며 ‘도장깨기’를 할 땐 교통비가 없어 1시간을 걸어서 귀가하기도 했다. 철권 마니아들 사이에서 ‘무릎’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배재민은 “부모님께 등짝을 맞고 혼이 나도 하굣길엔 어김없이 오락실로 향했다”고 했다.
게이머로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대학교를 중퇴한 배재민은 “2004년만 해도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평범하게 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던 때였다. 지금 같은 e스포츠 인프라가 없던 시절이라 게임으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그가 세계적 철권 고수로 이름을 날리고도 프로팀 유니폼을 처음 입은 건 서른이 넘은 2017년이었다. 배재민은 “당시엔 ‘연봉은 필요 없으니 대회에만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광노는 20대 중반부터 15년 넘게 대형마트 등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조이스틱을 잡았다. 지금도 프로팀 소속이 아닌 그는 인터넷 방송으로 번 수입과 그동안 모아뒀던 대회 상금을 써 가며 게이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 자격으로 오랫동안 국내외 대회에 출전했던 연제길은 올해 3월 프로팀에 입단했다.
‘아재 게이머’들은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과의 순발력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30대 시절부터 손목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배재민은 “예전엔 하루 종일 게임을 해도 멀쩡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손목이 아파 연습을 중단하기도 했다”면서 “너무 힘들 때는 게임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다시 떠올려 본다”고 했다. 이광노는 “쉴 때는 소파와 한 몸이 된다. 나이가 드니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회복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다”며 웃었다.
종목은 다르지만 한국이 아시아에서 격투게임 최강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똘똘 뭉친 세 사람은 금메달을 목에 걸겠단 각오다. 이광노는 “게임을 지금까지 붙잡고 있으면서 차곡차곡 쌓인 인생의 한을 풀고 싶다. 반드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겠다”고 말했다.